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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9-10-09
조회수 : 2,102
생명운동의 선구자 프란시스 쉐퍼
1. 쉐퍼와의 첫 만남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1912-1984).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인 것 같다. 목회자나 신학자를 제외하면 그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25년이나 되어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갈만한 시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평생 기억될 사람이다. 나의 20대를 쉐퍼 없이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며, 앞으로의 삶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쉐퍼와의 첫 만남은 대학부시절의 독서토론회와 이화여대 후문 다락방교회에서 있었던 강연에서 있었다. 대학부 선배들을 통해서 쉐퍼를 소개받았는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락방교회에서 진행된 강연은 이만열, 김명혁, 손봉호 교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강연 디렉터였던 남용우 목사님을 통해서 쉐퍼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2학년 때 한국라브리 수련회에서 있었던 제람 바즈와의 만남은 또 하나의 큰 축복이었다.

2. 쉐퍼의 인생(간략한 전기)
쉐퍼는 1912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저먼타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이었고 노동자였다. 18세에 목회자의 소명을 받았으며,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23세에 에디스 세빌과 결혼했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이후 신학교가 분리되면서 졸업은 페이스신학교에서 했다. 26세(1938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약10년 정도 목회를 하다가 1948년에 스위스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러나 쉐퍼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선교사역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학에 다니던 딸의 친구들이 주말을 이용해서 쉐퍼의 집을 방문해서 먹고 자면서 신앙적인 대화를 많이 했는데 이런 대화를 통해서 개종자들이 많이 생겼다. 소문이 퍼지자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스위스뿐만 아니라 인근의 여러 나라들에서 수많은 불신자들이 쉐퍼를 찾아와서 진리에 대하여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주님을 영접했다. 그래서 쉐퍼는 기존의 전통적인 선교사역을 포기하고 따뜻한 환대와 대화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955년 라브리공동체가 만들어졌다. 라브리(L'Abri)는 프랑스어로 ‘피난처, 쉼터’라는 뜻이다. 쉐퍼가 라브리 사역을 통해서 중점적으로 전한 내용은 무한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실재성,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존엄성, 비이성적 영역으로 도약을 시도하는 실존주의 철학의 허구성, 유물론적 인간관과 상대주의의 문제점 등이다. 이후 영국과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세도하여 50년대 말에서 60년대 말까지 쉐퍼의 사역은 대학 강연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강연과 집중강좌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의 책들은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대중적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첫 작품「이성에서의 도피」(1968년)를 시작으로 총23권의 책을 저술했다. 1976년에는「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1978년에는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순회상영 사역을 하였다. 1978년에 임파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이 시작되었으나 투병생활 중에도 그는 강연과 저술활동과 캠페인활동을 계속했으며, 1984년 5월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3. 쉐퍼의 생명운동
흔히 많은 사람들은 쉐퍼를 라브리공동체의 창시자 또는 복음주의적 변증가로 기억한다. 맞다. 위에서도 확인되듯이 올바른 이해다. 하지만 이것이 쉐퍼의 전부라면 쉐퍼가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쉐퍼는 라브리공동체의 창시자와 복음주의적 변증가에 머물지 않고 그의 인생 마지막 10년은 생명운동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허용한 시점(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부터 낙태, 영아살해, 안락사 등의 생명윤리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 1978년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영화와 책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을 시작했는데 강연, 영화상영, 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쉐퍼의 주장을 몇 가지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 문제가 로마가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밝힌다. 즉 당시까지만 해도 낙태문제에 로마가톨릭만 관심을 가졌는데 쉐퍼는 종교를 뛰어넘어 인류 전체가 관심을 가질 문제임을 지적한다. 둘째, 이런 문제들을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반대한다. 예를 들어 병원의 한쪽(분만실)에서는 6개월 된 조산아를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반면에 다른 한쪽(산부인과실)에서는 똑같이 6개월 된 정상아를 자궁절개술을 통해서 낙태시키는 실태를 고발한다. 또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어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국가가 장애아의 가능성이 있는 태아를 낙태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낙태한 부모는 가만히 놔두고 자녀를 조금 학대한 부모는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셋째, 낙태와 영아살해와 안락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여 이 문제들이 수면 아래에 있지 않게 한다. 즉 문제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알게 하고 해결을 시도한다. 넷째,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을 제시한다. 즉 경사면에서 자동차가 한번 미끄러지면 세울 수 없듯이, 낙태와 안락사에 있어서 약간의 예외 조항을 둬서 허용한다면 결국은 다 무너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혀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쉐퍼는 생명운동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생명윤리 분야의 여러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생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생명운동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임을 자각하고 교회를 일깨운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는 변화된 미국을 보고 있다. 과거의 미국교회는 낙태, 안락사, 배아줄기세포 문제에 있어서 성경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선거마다 생명윤리문제가 중요한 선거 이슈가 되었다. 어디에 그 원인이 있는가? 바로 쉐퍼다. 쉐퍼가 목숨을 걸고 생명운동을 했기 때문에 생명윤리에 관한 미국 개신교 전체의 입장이 바뀌었다. 21세기는 생명목회의 시대다. 수많은 생명윤리 이슈들에 대하여 교회가 답을 제시하고, 생명운동을 할 때이다. 이런 차원에서 생명운동의 선구자 프란시스 쉐퍼의 삶과 그의 메시지를 다시 조명해본다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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