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 섬기는 사람들/ 오시는 길
Untitled Document
   
 
 
 
Home>생명윤리선교부>목양칼럼
 
날짜 : 2009-10-09
조회수 : 2,519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5월 21일 소위 ‘존엄사’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판결대로 6월 23일에는 식물인간상태의 환자에게 부착된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곧 죽을 것을 예상하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는데 환자는 죽지 않았고,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앞으로 몇 개월은 더 살 것이라 한다. 환자를 살려 달라고, 호흡기를 제거해도 몇 개월은 더 살도록 기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인간의 교만과 반생명의식을 준엄하게 꾸짖는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의 생명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존엄사’와 관련된 국민 대다수의 의식이 반생명, 반기독교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 약 90%가 ‘존엄사’를 찬성하고, 모 장로교단 장로님들의 85%가 ‘존엄사’를 찬성한다. 기독교인만큼은 다른 입장이기를 기대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존엄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존엄사’의 문제점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겠기에 그 문제점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존엄사’는 존엄한 죽음이 아니라 ‘소극적 안락사’다. 즉 살인행위이다. 식물인간상태의 환자에게 공급되는 음식물과 수액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죽이는 행동을 그동안 ‘소극적 안락사’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다는 뜻을 담고 있는 ‘안락사’라는 말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존엄사’라는 용어를 최근에 만들었다. ‘존엄사’(Death with dignity)! 존엄한 죽음! 당연히 찬성하고 수용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내용 즉 용어가 담고 있는 실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용어가 변하자 사람들은 그 내용까지 변한 것으로 생각하고 좋아하고, 찬성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용어일 뿐, 내용은 그대로 있다.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략적인 용어일 뿐이다.

둘째, ‘존엄사’는 연명치료의 중단과 엄연히 다르고 구별되어야 한다. 심각한 질병과 노화 등으로 더 이상 치료의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억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적인 죽음의 과정을 맞는 것을 연명치료의 중단이라 한다. ‘존엄사’는 의사의 직접적인 행위(호흡기 제거 또는 음식물 튜브 제거)에 의해 죽는 것이지만 연명치료의 중단은 치료중단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이미 있는 그 질병에 의해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연명치료의 중단까지 ‘존엄사’로 소개하여 사람들에게 ‘존엄사’를 찬성하도록 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이 단적인 예다. 그 분의 죽음은 ‘존엄사’가 아니라 연명치료의 중단이었다. 기독교에서는 연명치료의 중단은 수용하지만, ‘존엄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셋째, 식물인간상태의 인간 역시 온전한 인간이며 그의 생명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의식기능이 없다고 여겨지는 식물인간상태의 인간을 인간 이하의 존재, 동물적 생명만 유지한 존재로 생각한다.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가? 식물인간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식물인간상태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성경은 인격과 의식의 좌소를 영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뇌(특히 대뇌)는 인간 의식이 표현되는 메커니즘으로 봐야한다. 즉 대뇌기능이 마비되어 의식기능이 없다는 것은 의식기능 자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뇌를 통해서 표현되지 않음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인간관의 관점에서 육체의 생명이 있는 한, 의식이 현대의학으로 감지되지 않더라도 의식이 있다고 봐야 하며 영혼이 머물고 있는 온전한 인간으로 봐야 한다.

넷째, 환자는 죽을 권리가 없고 의사와 판사는 환자를 죽일 권리가 없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출생과 죽음의 권리는 하나님께만 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 권리는 절대적 권리인 생명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만약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권까지 적용된다면 자살하려는 사람을 무슨 근거로 막을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의사와 판사는 더더구나 환자를 죽일 권리가 없다. 특별히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당장 죽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환자가 4개월이나 생존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러므로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생명주권에 겸허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 생사여부는 오직 하나님께만 맡겨야 한다.

이상에서 ‘존엄사’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다. 그런데 ‘존엄사’와 관련된 문제 상황이 다른 사람의 일만이 아니다. 나와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란 사실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엄한 존재이며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평소의 신앙고백을 이런 상황에서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나와 다른 가족의 편의를 위해서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환자를 사랑하고 돌보고 간호하는 것이다. 국가의 경제적, 의료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는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1997. SaRang Church All Rights reserved.
(06655)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121 사랑의교회 / 대표전화 : (02) 3495-1000~4  약도